[최신영화] 덩케르크 (Dunkirk, 2017) 영화

오랜만에 눈물 나게 한 영화 (★★★★★)


영화를 보통 혼자 보는 나로서는 몰입이나 감정이입에 큰 구애를 받지 않는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본 영화 중에 마음껏 감정을 이입하고 눈물 나게 한 것은 없었다.

덩케르크(2017)는 정말 오랜만에 코끝 찡함을 넘어 눈물이 났던 영화였다.



아래 내용을 펼치면 줄거리가 포함되어 있어서 스포일 가능성이 있다.

영화를 이미 본 분이나 스포가 좀 있어도 상관없는 분들만 보시길 바란다.



1.

영화는 덩케르크에 갇혔던 영국군이 탈출하는 과정을 그렸다.

독일군의 포위상황은 암묵적인 전제처럼 깔려있지만, 구체적인 독일군의 모습이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하늘에서 갑자기 나타나 폭격을 퍼붓는 전투기의 모습으로만 그려져서,

상황의 압박감과 더해가는 절박감을 만드는 요소로 쓰였다.


2.

한 상황에 대해 세 가지 다른 시각이 교차적으로 제시된다.

뭍에서 폭격의 공포에 떨며 실낱같은 희망에 기대 탈출할 방법을 찾는 병사들의 시각,

전쟁의 위험 속에서도 장병들을 구하려는 일념으로 필사의 항해를 하는 선주의 시각,

하늘에서 독일군의 전투기와 교전하다가 추락의 위험을 맞는 전투기 조종사의 시각.

독일군의 폭격에 병사들이 하릴없이 쓰러지고, 배에 오르는 길이던 다리가 부서지는 상황은

육지의 긴장감과 아비규환으로 한 번 아프고, 공중전에서의 긴박감으로 한 번 더 심장을 죈다.

전쟁의 참상이 누군가를 다치게 하는 동안, 누군가는 그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힘껏 싸우고 있다.


3.

전쟁같은 혼란 속에서는 영웅이 나기 쉽다.

독일군 전투기를 격추해 덩케르크 해안의 청년들을 구하고 적지에 불시착한 전투기 조종사,

곤경에 빠진 군인들을 구하기 위해 팔 걷어 붙이고 나서는 선주들,

자신이 쓸모가 있을 거라며 용기를 내어 배에 올라타고 배 위에서 숨을 마감한 평범한 소년,

장병을 실은 마지막 배가 출발하고도 해안에 남아 프랑스군을 돕겠다는 해군 제독,

목숨이 위태로운 전장에서 살아 돌아온 병사들,

그리고 지고 돌아온 장병들을 따뜻하게 환대하는 영국 시민들.

누구든 살고싶어 하는 아비규환 속에서도 동료에게 손 내미는 사람들,

남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위험을 무릅쓰고 달려가거나 그 자리에 남는 사람들,

어려움을 함께 나누고 서로 위로할 줄 아는 사람들.

이런 모습들이 아름다운 모자이크처럼 다가왔다.


4.

그럼에도 불구하고 총알이 빗발치고 배에 물이 들어차는 상황에서는

나와 내 주변부터 살고자 하는 이기심이 고개를 든다.

영국인이 아닌 프랑스인이라서, 척탄병이 아닌 보직을 가져서, 같은 부대가 아닌 타 부대 소속이라서,

원 밖의 사람들은 희생당할 수 있다.

더 작은 원 안의 사람들을 우선 돌보게 되고,

결국 그 원이 가장 작아질 때는 내 살 길만 찾게 될 것이다.

이런 상황 때문에 인류애와 희생이 더 숭고하게 다가오겠지만,

이것은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되는 무엇보다도 큰 이유다.

인간 본성의 밑바닥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사례일 테니까.


5.

신파라고 표현한 경우를 적잖이 봤는데,

저 멀리서 영국의 민간선박들이 다가오는 장면은 신파 말마따나 격한 감정을 몰고왔다.

망원경으로 배들을 확인한 제독이 "조국" 또는 "희망"을 말하자 (자막은 "조국", 들리기로는 "hope"였다)

내 눈물샘은 자기가 아직 제 기능을 한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구원의 손길을 기다리다 지쳐가던 군인들에게는 무슨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희망과 감격으로 다가왔으리라.

이제 다 끝났다는 안도와 고마움, 이런 말로는 표현 안 되게 커다랗고 진한 감정의 홍수.

안도감도 잠시, 독일군 폭격기가 공격을 위해 하강하자 모든 걸 포기하듯 눈을 감던 제독이

아군기의 힘겨운 승리에 기쁘게 눈을 뜨고, 이어지는 병사들의 환호성.

때로는 뻔한 이야기가 큰 감동을 가져오기도 한다.


6.

음악에 대해서도 많은 코멘트들을 보았고 대체로 공감한다.

배경음악은 상승과 하강의 음을 반복해서 무언가 다가오는 긴장감을 유지했다.

음악이 아름답지는 않았지만, 영화의 분위기를 살리는 데에 제몫을 했다.


7.

여자 등장인물이 별로 없다. 이따금씩 나오는 간호장교들이나 배를 타고 구하러 온 사람 중 하나가 전부다.

여자가 없는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영화에서 드러내고자 한 감정들은 모두 진하게 표현됐다.

두려움과 공포, 살고자 하는 이기심, 안도감, 패배감과 좌절감, 숭고한 인류애.

이들을 그려내는 데 남자 인물들만으로도 충분했고

남녀간의 사랑이나 다른 감정요소가 들어갈 일이 없어서 깔끔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실제 전장에서도 여군이 드물고 작중 상황과 비슷한 경우에 먼저 탈출시켰을 것 같기도 하고.


8.

오랜만에 본 영화이고, 그보다 더 오랜만에 울게 만든 영화라서.

극장에서 본 것을 전혀 후회하지 않고, 또다시 보고픈 마음도 든다.

좋은 영화였다.





덧글

  • 우물쭈물하지않으리 2017/07/23 00:24 # 답글

    전 홈이라고 들었네요 그래서 번역을 조국이라고 햇구나~ 했어요
  • 기분좋은 코끼리 2017/07/23 00:28 #

    앗 맞아요! 다른 부분에서는 다 홈이라고 들렸는데.. 그 부분에서만 제가 잘못 들은 것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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